12월 4, 2025의 게시물 표시

심판의 전령 - 31장 –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

31장 –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 1. “위에 더 큰 사람 있어요” – 익명의 댓글 하나 〈사라진 증언들, 다시 말을 찾다〉가 온라인에 올라간 지 나흘째 되는 날. 기사는 폭발적인 화제는 아니었지만, 오래, 묵직하게 읽히고 있었다. 포털 상단에서 슬그머니 밀려난 뒤에도 댓글 창에는 늦게 기사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국을 남겼다. – “이 기사 세 번 읽었습니다. 저장도 했어요.” – “예전에 제 기사도 하루 만에 내려갔는데, 그때 기분이 떠올라서 울었습니다.” – “학교, 직장, 공사장… 결국 다 구조 문제네요.” 스크롤을 내리던 서연의 손이 한 줄에서 멈췄다. – “기자님, 이 정도는 아직 ‘아랫선’입니다.” 닉네임은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조합이었다. – “학교, 직장, 현장 기사 지우던 O.T는 ‘손’에 불과해요.” – “진짜는 면책 구조 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 “그 사람은 기사에 이름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법에도, 속기록에도, 재판 기록에도 이름이 없습니다.” – “모두가 존재를 아는데도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 – “기자님이 ‘이름과 구조’를 쓰기 시작했으니—” 마지막 줄. – “언젠가 그 이름 없는 사람 에 대해 쓰게 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읽는 동안 서연의 등줄기를 서늘한 것이 한 줄 타고 내려갔다. 모두가 존재를 아는데,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 구조를 설계하고, 면책을 설계하고, 책임을 나눠 숨기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 그녀는 댓글 작성자에게 조심스럽게 쪽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기자 윤서연입니다. 방금 기사에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 “혹시 말씀하신 그 ‘면책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수 분 뒤 짧은 답장이 왔다. ...

심판의 전령 - 29장 – 지워진 기사, 사라진 증언

29장 – 지워진 기사, 사라진 증언 1. “기록되었습니다” – 그리고 몇 시간 후, “요청하신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청문회가 끝난 지 사흘째 되는 아침. 윤 서연의 휴대전화는 알림 소리로 쉴 새 없이 울렸다. – “서 기자님, 이번 기사 진짜 좋았어요.” – “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그 문장, 너무 세게 박혔습니다.” – “링크 좀 다시 보내 주세요, 친구들 단톡에 뿌리게.” 그녀가 쓴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이름을 구조 옆에 쓴 날 –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고 말한 사람들〉 서두에는 청문회장의 세 문장을 배치해 두었다. “저는 이 구조에서 완벽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 김성훈 “제 이름도 그 구조와 함께 비판받아야 합니다.” – 민도윤 “이제 우리는 구조를 쓸 때, 그 옆에 사람 이름까지 함께 써야 합니다.” – 청문회장 발언 서연은 이 세 문장을 “오늘 한국의 공식 장부에 새로 쓰인 문장”이라고 불렀다. 기사는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SNS에서 공유 수가 올라가고, 댓글에선 찬반이 격하게 부딪혔다. – “그래, 이게 진짜 구조 얘기지.” – “자기들도 책임 있다며 퉁치려는 거 아님?” – “그래도 최소한 ‘내 책임도 있다’고 말한 금융인, 처음 본다.” – “기자들이 또 영웅 만들기 시작했다 ㅋㅋ” 정오 무렵, 포털 메인 한켠에 짧은 시간이나마 기사 링크가 걸렸다. “청문회 현장 르포 –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고 말한 날” 서연은 잠깐 그 화면을 캡처해 두었다. 그래, 이 하루만이라도— 이 문장들이 사람들 눈앞에 떠 있는 날이 있자.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오후 세 시를 조금 넘겼을 때, 지인이 보낸 메시지 하나가 화면 맨 위로 튀어 올랐다. – “어? 기사 왜 안 떠요?” – “아까 읽다 말았는데, 지금 누르면 ‘요청하신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나와요.” 서연의 심장이 한 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