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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전령 - 2장 – 조용한 교실의 살인

2장 – 조용한 교실의 살인 1. 강가의 꽃다발 겨울로 넘어가는 강바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를 품고 있었다. 젖은 흙, 오래된 낙엽, 도시에서 흘러 내려온 기름기, 그리고… 한 번도 제대로 끝나지 못한 울음의 잔향. 한강 둔치의 자전거 도로 한쪽, 철제 난간 아래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계단 끝에 작은 제단이 하나 있었다. 낡은 곰 인형 하나, 바람에 색이 바랜 종이학 몇 개, 비닐 포장도 제대로 뜯지 못한 채 놓여 있는 편의점 꽃다발. 꽃다발 옆 사진틀 속에는, 교복을 입은 소년 하나가 웃고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생의 웃음처럼 반듯했고, 눈가에는 아직 어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의 맑음이 남아 있었다. 사진 밑에는 손글씨로 적힌 글이 있었다. “민서야, 엄마는 아직도 네가 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강바람이 종이 쪽지를 살짝 흔들었다. 글씨는 여러 번 눈물에 번졌다 다시 덧그려진 흔적이 있었다. 철제 난간 옆,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한 시온. 그는 강물을 보지 않고, 꽃다발과 사진, 그리고 사진 속 소년의 웃음을 보고 있었다. 눈빛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 오래된 것을 다시 꺼내 읽는 사람 의 눈이었다. 잠시 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중년 여인이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 패딩 점퍼와 낡은 운동화, 손에는 작은 국과 반찬이 든 도시락 용기. 그녀는 꽃다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왔다, 민서야…” 목소리는 강바람보다 더 떨렸다. 그녀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은 국그릇 뚜껑을 열었다. “너 좋아하던 미역국 끓였다. 생일날은… 못 지켜줬지만, 오늘은 그냥… 네가 먹고 싶어 했을 것 같아서…” 그녀의 손이 국그릇 위에서 잠시 멈췄다.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얘기 좀 했어. 선생님이 또 그러더라. ‘어머님, 이제 그만 놓아 드...

심판의 전령 - 2장 – 조용한 교실의 살인

2장 – 조용한 교실의 살인 1. 강가의 꽃다발 겨울로 넘어가는 강바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를 품고 있었다. 젖은 흙, 오래된 낙엽, 도시에서 흘러 내려온 기름기, 그리고… 한 번도 제대로 끝나지 못한 울음의 잔향. 한강 둔치의 자전거 도로 한쪽, 철제 난간 아래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계단 끝에 작은 제단이 하나 있었다. 낡은 곰 인형 하나, 바람에 색이 바랜 종이학 몇 개, 비닐 포장도 제대로 뜯지 못한 채 놓여 있는 편의점 꽃다발. 꽃다발 옆 사진틀 속에는, 교복을 입은 소년 하나가 웃고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생의 웃음처럼 반듯했고, 눈가에는 아직 어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의 맑음이 남아 있었다. 사진 밑에는 손글씨로 적힌 글이 있었다. “민서야, 엄마는 아직도 네가 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강바람이 종이 쪽지를 살짝 흔들었다. 글씨는 여러 번 눈물에 번졌다 다시 덧그려진 흔적이 있었다. 철제 난간 옆,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한 시온. 그는 강물을 보지 않고, 꽃다발과 사진, 그리고 사진 속 소년의 웃음을 보고 있었다. 눈빛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다만 무언가 오래된 것을 다시 꺼내 읽는 사람 의 눈이었다. 잠시 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중년 여인이 비닐봉지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검은 패딩 점퍼와 낡은 운동화, 손에는 작은 국과 반찬이 든 도시락 용기. 그녀는 꽃다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심스럽게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왔다, 민서야…” 목소리는 강바람보다 더 떨렸다. 그녀는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은 국그릇 뚜껑을 열었다. “너 좋아하던 미역국 끓였다. 생일날은… 못 지켜줬지만, 오늘은 그냥… 네가 먹고 싶어 했을 것 같아서…” 그녀의 손이 국그릇 위에서 잠시 멈췄다.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얘기 좀 했어. 선생님이 또 그러더라. ‘어머님, 이제 그만 놓아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