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 2025의 게시물 표시

심판의 전령 - 31장 –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

31장 – 이름을 끝까지 숨기려 한 자 1. “위에 더 큰 사람 있어요” – 익명의 댓글 하나 〈사라진 증언들, 다시 말을 찾다〉가 온라인에 올라간 지 나흘째 되는 날. 기사는 폭발적인 화제는 아니었지만, 오래, 묵직하게 읽히고 있었다. 포털 상단에서 슬그머니 밀려난 뒤에도 댓글 창에는 늦게 기사를 발견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국을 남겼다. – “이 기사 세 번 읽었습니다. 저장도 했어요.” – “예전에 제 기사도 하루 만에 내려갔는데, 그때 기분이 떠올라서 울었습니다.” – “학교, 직장, 공사장… 결국 다 구조 문제네요.” 스크롤을 내리던 서연의 손이 한 줄에서 멈췄다. – “기자님, 이 정도는 아직 ‘아랫선’입니다.” 닉네임은 숫자와 알파벳이 뒤섞인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조합이었다. – “학교, 직장, 현장 기사 지우던 O.T는 ‘손’에 불과해요.” – “진짜는 면책 구조 를 설계한 사람입니다.” – “그 사람은 기사에 이름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법에도, 속기록에도, 재판 기록에도 이름이 없습니다.” – “모두가 존재를 아는데도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 – “기자님이 ‘이름과 구조’를 쓰기 시작했으니—” 마지막 줄. – “언젠가 그 이름 없는 사람 에 대해 쓰게 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읽는 동안 서연의 등줄기를 서늘한 것이 한 줄 타고 내려갔다. 모두가 존재를 아는데, 아무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 구조를 설계하고, 면책을 설계하고, 책임을 나눠 숨기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 그녀는 댓글 작성자에게 조심스럽게 쪽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기자 윤서연입니다. 방금 기사에 남겨주신 댓글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 “혹시 말씀하신 그 ‘면책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수 분 뒤 짧은 답장이 왔다. ...

심판의 전령 - 17장 – 반격하는 손, 새로 적히는 이름

17장 – 반격하는 손, 새로 적히는 이름 1. 위기관리 회의, “우리는 악당이 아니다”라는 대본 정○○ 회장실 바로 옆, ‘전략기획실’이라 적힌 회의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문 위에 다른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았다. “위기관리 상황실.” 긴 테이블 양쪽에 법무팀장, 홍보실장, 인사담당임원, 외부 로펌 파트너 변호사 둘, 언론 대응을 총괄하는 컨설턴트 하나가 줄지어 앉아 있었다. 벽면 스크린에는 어제부터 쏟아진 기사와 댓글, SNS 트렌드 키워드가 실시간으로 떠 있었다. “#도시의장부” “#정○○” “#구조의얼굴” “#전령보다_장부” 홍보실장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회장님, 여론이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서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정치인, 병원장, 원장에게 분노가 쏠렸다면—” “이제는 ‘도시의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으로 회장님 이름이 묶이고 있습니다.” 외부 로펌 파트너 변호사가 손을 들었다. “법적 측면에서 보자면, 당장 형사 책임 으로 들어올 만한 건 아직 제한적입니다.” “등기부, 공시자료, 정치자금 공개 내역을 조합해 ‘구조적 연결’을 그려낸 것뿐이라면—” “우리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법무팀장이 끼어들었다. “명예훼손 소송, 강하게 검토 중입니다.” “ ‘악의적 편집’, ‘의도적 인과관계 왜곡’ 이런 키워드로 언론사와 기자 개인을 동시에 압박하는 방향으로—” 말을 잇는 순간, 정 회장이 손을 들었다. “언론사를 상대로 정면전부터 벌이지는 맙시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단단했다. “이 정도 준비를 해 온 기획이라면 소송도 그들이 어느 정도 예상하고 대비해 놓았을 겁니다.” “우리가 먼저 고소장을 내면—” 그는 스크린에 떠 있는 키워드들을 한 번 훑어봤다. “그 자체가 또 다른 기사 제목이 되겠죠.” “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