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전령 - 32장 – 이름을 팔아 죄를 짊어진 자

32장 – 이름을 팔아 죄를 짊어진 자 1. “사과를 맡아 드립니다” – 새로운 얼굴 강인섭 이사장의 부고가 신문 구석에 조용히 실린 지 한 달쯤 지난 봄. 도시는 새로운 파문 하나에 휘말려 있었다. “○○그룹 계열사, 하청 노동자 사망 은폐 의혹.” 야간 공장에서 기계에 끼인 노동자가 사망한 뒤, 사측이 신고 시간을 늦추고, 안전 기록을 조작하고, 유족에게 “조용한 합의”를 종용했다는 제보가 터졌다. 유족의 눈물, 현장 동료들의 증언, 노동단체의 기자회견. 며칠 동안 뉴스는 그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그 혼란의 중심에 새로운 얼굴 하나가 TV 화면에 나타났다. 검은 정장, 정돈된 머리, 적절히 낮은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사건 관련 대외 대응을 맡게 된 변호사 한도진입니다.” 자막에는 짧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기관리 전문 변호사 / ○○공익법센터 이사”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먼저 고인의 죽음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법률적인 책임과는 별개로,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며—” 그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을 마치 입안에서 굴려 본 뒤 천천히 꺼내는 사람처럼 정확한 속도로 발음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오늘을 기점으로, 회사는 인사 조치와 안전 시스템 전면 재점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말은 길었지만, 결론은 간명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상처를 깊이 유감 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회사 전체가 구조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은 일부 관리자의 심각한 판단 미스와 현장 시스템상의 허점이 겹친 불행한 사고다.” 문장들은 부드럽게 흘렀다. 사과와 변명, 책임과 면책, 위로와 요청이 한 몸처럼 섞여 있었다. 질문이 나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그룹 차원의 책임자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한도진은 조금도...

심판의 전령 - 24장 – 드러난 이름, 드러나지 않은 칼날

24장 – 드러난 이름, 드러나지 않은 칼날

1. 로그 추적 – 숫자 속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는 기술

자산운용사 ○○타워 19층,
리스크 관리·준법감시팀 사무실.

회색 칸막이 사이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엷게 섞여 있었다.

팀장 박진수
모니터 두 대를 나란히 켜 놓고
눈을 좁혔다.

왼쪽 화면에는
최근 3개월간 내부 문서 열람 기록.
오른쪽 화면에는
사내 보안 프로그램이 자동 추출한
“비정상 접근 패턴” 목록.

“……여기 있다.”

그의 마우스 커서가
특정 시각을 가리켰다.

  • 접속 시간: 22시 37분

  • 위치: 27층 ○○본부

  • 접속 계정: 사원번호 ○○○-A17

  • 열람 문서: “Risk_Dispersion_Internal_Meeting_3.hwp”

  • 이후 행동: 개인 PC 폴더로 복사 (사내 규정상 ‘주의’ 대상)

옆에서 모니터를 같이 보던
주임이 물었다.

“그 시간대에
야근하던 사람
몇 명 안 되지 않습니까?”

박진수가
짧게 끄덕였다.

“인사팀에서
출입 카드 기록 받았어.”

그는
다른 창을 열었다.

“22시 이후
27층에 남아 있던 사람,
세 명.”

화면에는
세 개의 이름이 떠 있었다.

  • 민도윤 – 본부장

  • 비서팀 ○○○ – 비서

  • ○○팀 대리 김성훈

주임이 중얼거렸다.

“본부장이
자기 문서를 빼가진 않겠죠.”

“비서는
관련 권한이 없고…”

“남는 건
한 명이네요.”

박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신하긴 이르다.”

“단순히
업무 때문에 복사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는
작게 덧붙였다.

“요 며칠
우리 회의록 일부가
기사에 등장하고 있지.”

주임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신고하시겠습니까?”

“윗선에
‘유출자 추정 인원’으로…”

박진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구조를 지키는 팀에 속해 있다.

법과 규정을 통해
회사의 장부를
방어하는 일이
내 역할이다.

그런데—

그는
최근 읽었던 기사 제목이
문득 떠올랐다.

“정○○ 이후,
더 세련된 성벽을 설계하는 사람들”

그 기사에서
“구조를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선한 편에 서 있는 자로
묘사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이 닿지 않게 벽을 쌓는 사람들”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회사의 기밀인가,
아니면
사람을 숫자로 만드는 구조인가.

그래도
현실은
그의 머릿속 이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박 팀장님,
위에서 찾으십니다.”

“자산운용 본부장님 방으로
올라오시죠.”

민도윤.

박진수는
모니터를 끄고
자켓을 걸쳤다.


2. 본부장실 – 서로의 계산이 어긋나는 순간

27층,
민도윤의 집무실.

창밖으로
도시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벽에는
굵은 글씨로 인쇄된
ESG 슬로건 포스터가
세련된 액자에 걸려 있었다.

민도윤은
책상에 팔짱을 낀 채
서류 몇 장을 넘기고 있었다.

박진수가 들어오자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박 팀장님,
내부 문서 열람 로그
검토해 보셨죠.”

박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몇 가지
‘주의 요망’ 패턴이 있습니다.”

민도윤이 물었다.

“유출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특정할 수 있습니까.”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서늘한 선이
깔려 있었다.

박진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사에 나온 표현과
회의록 원문을 비교해 볼 때—”

그는
한 문장을 골라 말했다.

“ ‘도덕적 비난은
일정 부분 감수하되,
실질적인 제재 가능성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한다.’ ”

민도윤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 문장은
분명
내부 회의록에만
적혀 있는 문장이었다.

“그 표현은
외부 어디에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박진수가
계속 말했다.

“그 문서를
그 시각에 열람한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민도윤이 물었다.

“누굽니까.”

잠시 침묵.

“○○팀 대리,
김성훈입니다.”

그 이름이
공기 위에 떠올랐다.

민도윤은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성훈.

열심히 야근하고,
말없이 보고서를 정리하고,
숫자를 맞추며
결코 회의에서
맨 앞줄에 앉지 않는 사람.

그는

듣는 자였다.


내가 구조에서 필요로 하던
타입이었지.

민도윤이 물었다.

“증거는
충분합니까.”

박진수는
정직하게 말했다.

“아직은
‘정황’ 수준입니다.”

“개인 PC에
파일이 남아 있는지,
외부 접속 흔적이 있는지—”

“좀 더
조사해야 합니다.”

민도윤은
의자에 등을 기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언론에 문서가 새어나가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구조를
개혁 상품으로
포장하려고 하는데—”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 ‘개혁 상품’ 안에서
내부 고발이 계속 나오면,
투자자들이
겁을 먹겠죠.”

박진수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민도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띄었다.

“직접적인 징계 절차는
조금 미룹시다.”

“대신—”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를
이쪽으로 보내 주세요.”

“잠깐
얘기를 해 보죠.”

박진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민도윤은
책상 위에 놓인
신문 한 부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어제 발행된
〈성벽 안과 밖〉 1화가
접혀 있었다.

제목 아래
굵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의 몰락 이후에도
성벽은 계속 지어진다.”

“다만
이제는
얼굴이 없는 설계자들에 의해.”

민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기사의 ‘얼굴 없는 설계자’라는 말은—

결국
나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겠지.

그는
신문을 접어
서랍에 넣었다.

이번에는
서랍을 잠갔다.


3. 편집국의 고민 – 이름을 적을 것인가, 구조를 그릴 것인가

언론사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새 제목 후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성벽 안과 밖 2화 –
‘책임을 잘게 쪼개는 법’ ”

“성벽 안과 밖 2화 –
‘ESG의 이면, 구조의 그림자’ ”

“성벽 안과 밖 2화 –
‘얼굴 없는 설계자들, 그리고 한 명의 익명’ ”

윤 서연이
화이트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지우가
제보자가 보낸
두 번째 회의록 파일을
프린트해
테이블 위에 펼쳐놨다.

“이 정도면
실명 보도 가능하지 않나요?”

젊은 기자 하나가 말했다.

“문서 표현이
해당 회사 내부 언어랑
거의 일치하고,
시기랑 인물도
좁혀집니다.”

“ ‘M사 자산운용본부장 민○○’ 정도는—”

서연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우리가
누구를 ‘악역’으로 만들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침묵.

서연이
천천히 설명했다.

“정○○ 사태에서
많은 언론이
‘한 사람의 악’을
확대해서 팔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사 조회수는 잘 나오지만—”

“구조를 설계한 수많은 이름들은
계속
그림자 속에 남습니다.”

젊은 기자가 물었다.

“그래도
책임자로 지목 가능한
핵심 인물들은
드러내야 하지 않습니까?”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만
우리의 목적은
새 정○○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보드에
굵게 적힌 네 글자를 가리켰다.

“ ‘어디에서
사람이 숫자로 바뀌는가’ 를
보여 주는 겁니다.”

지우가 말을 이었다.

“두 번째 회의록은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문서를
‘민○○의 죄’로만 쓰면—”

“우리가 보여주려 했던
책임 분산 구조 자체
또다시 사람 한 명 뒤로
숨어 버릴 겁니다.”

회의실 공기가
무거웠다.

서연이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이번 2화에서는
회사와 개인을
이니셜 처리합시다.”

“대신
구조와 문장을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내죠.”

“그리고—”

그녀는
테이블 위의 회의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 ‘익명 제보자 A’의 존재를
분명하게 씁시다.”

“이 구조 안에서
처음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사람.”

“나중에
실명을 공개할 일이 생기더라도—”

“그때는
그를
단지
‘유출자’가 아니라,
증언자로 부를 수 있도록.”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무팀이랑
한 번 더 상의하죠.”

“실명 보도 여부는
잠시 유보하되,
구조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는 걸로.”

서연은
메모장에
2화 제목을 적었다.

“성벽 안과 밖 2화 –
‘책임을 잘게 쪼개는 기술,
그리고 한 사람의 망설임’ ”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이 제목을 보는 사람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겠지.

구조를 설계한 사람일 수도,
그 구조 안에서
작은 용기를 낸 사람일 수도 있다.

둘 중
누구든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이 도시의 장부에
새 줄을 더하고 있었다.


4. 감옥의 방문 – 작은 기사 한 줄이 가져온 사람들

며칠 뒤,
교도소 집무실.

소장과
교정국 공무원 둘,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 셋이
마주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프린트된 기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성벽 안과 밖 – 프리뷰 기사〉
하단 구석에는
짧은 문단이 붙어 있었다.

“한편,
최근 ○○교도소 작업장에서
폭력 사건과 관련된 진정이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도소 내에서
‘누가 맞아도 되는지’를 정하는
비공식 서열 장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온다.”

“교정 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현장의 수용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름이
숫자로만 취급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소장이 말했다.

“기자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문장이네요.”

“ ‘누가 맞아도 되는지’라…”

시민단체 활동가 중
한 명이 말했다.

“실제로
그런 서열 구조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른 교도소에서
수용자 면담할 때
수도 없이 들은 얘기입니다.”

“이번엔
결국
진정서까지 들어갔다고 하니—”

그는
소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소장이
눈을 피했다.

“진정은
절차에 따라
처리 중입니다.”

“다만
언론에서
아직 조사도 끝나기 전에
이렇게 써 버리면—”

공무원이 끼어들었다.

“그래도
소장님.”

“이왕 기사까지 난 김에,
이번 한 번
작업장 구조
제대로 점검해 보시죠.”

“폭력 서열이
진짜로 있다면—”

“그 장부를
한 번쯤
뒤집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 조사팀 꾸리겠습니다.”

“당장
수용자 몇 명
개별 면담부터 시작하죠.”

그날 오후,
정○○는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았다.

“○○호,
상담실로 나와.”

상담실에는
시민단체 변호사 하나와
교도관 둘이
앉아 있었다.

변호사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외부 인권단체에서
온 변호사입니다.”

“최근
여기 작업장에서
폭력과 관련된 진정이 들어왔다고 해서—”

정○○는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내가
쓴 진정서 한 장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탁자 위로
올라가고,

거기서
또 누군가를
이 방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변호사가 물었다.

“당신이
그 진정을 쓰셨습니까.”

정○○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썼습니다.”

변호사가
노트를 펼쳤다.

“여기
진정서 문장이
특이해서요.”

“일반적인 진정서에는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표현이 많은데—”

“여기에는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그는
한 문장을 읽었다.

“ ‘이 작업장은
사람의 몸이
어디까지 맞아도 되는지
기준을 세운 장부처럼
운영되고 있다.’ ”

정○○는
조용히 말했다.

“장부를
많이 써 본 사람이라서 그럽니다.”

“숫자를
많이 다뤄 본 사람이라서.”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도
누군가
비슷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쓴 문장과
또 다른 장부가—”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같은 지점에서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는
그 말의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옥중에서
처음으로 쓴 장부 한 줄이—

이 도시 어딘가의
또 다른 장부와 연결되기 시작했구나.


5. 본부장과 대리 – 같은 방, 다른 심장 박동

그날 저녁,
○○타워 27층.

민도윤의 집무실 앞에
김성훈이
서 있었다.

손에는
A4 노트와 볼펜,
눈가에는
밤샘 작업의 피로가
엷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서가 말했다.

“들어가세요.”

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
방에 남았다.

민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물었다.

“성훈 씨.”

“요즘
야근이 많죠.”

김성훈이
입술을 축였다.

“예,
연말 결산 준비 때문에…”

“죄송합니다.
혹시
보고서에 문제라도…”

민도윤이
손을 흔들었다.

“보고서 얘기가 아닙니다.”

침묵을 한 번 가르고,
그는
곧장 핵심으로 들어갔다.

“우리 회사 문서가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김성훈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그 중 일부는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회의록 내용입니다.”

민도윤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꿰뚫었다.

“성훈 씨가
그 문서를
열람한 시간과,
그 직후의
PC 사용 기록을
보았습니다.”

김성훈은
숨이 걸리는 듯
가슴속이 조여 왔다.

들켰다.

아니—

아직은
‘추정’일 뿐이다.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민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어느 편에 서고 싶은지
알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회사 편,
구조 편,
정의 편…
이런 구호 말고요.”

“그냥—”

민도윤은
자기 가슴을 한 번 가리켰다.

“당신 자신의
삶과 이름의 편.”

김성훈이
눈을 치켜떴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저를
고발하겠다는 겁니까.”

민도윤이
웃었다.

“지금
여기서
당신을 몰아붙이면—”

“경찰서와 법원에서는
나중에
나를 칭찬하겠죠.”

“ ‘내부 유출자를
신속히 색출해낸
책임 있는 관리자’라고.”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성벽 안과 밖〉 같은 기사에서는
나를
완벽한 악역으로
그려 주겠죠.”

“한 사람을
또다시
새로운 정○○로 만들었다고.”

김성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제가
문서를 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걸 외부에 보냈다는 증거는—”

민도윤이
손을 들었다.

“증거 얘기
아직 하지 맙시다.”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는
이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책임을 쪼개고,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법의 언어 안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악을 저지르는 법
배웠습니다.”

김성훈의 눈이
커졌다.

민도윤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나의 재능이죠.”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은—”

그는
김성훈을 가리켰다.

“그 구조를
굴러가게 만드는
톱니입니다.”

“나는
당신이
갑자기
톱니에서
칼날로 변하는 게
두렵습니다.”

방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김성훈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죄책감을 느낀 적이 없습니까.”

민도윤이
잠시 웃음을 거두었다.

“그 질문을
누가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 보죠.”

“이 구조에서
월급을 받아 온 사람은
당신과 나,
둘 다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악의 중심’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 구조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김성훈이 말했다.

“그래서
회의록을
바깥으로 보냈습니다.”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이 구조를
외부에서
볼 수 있어야 하니까.”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우리 둘 다
죄인입니다.”

침묵.

민도윤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좋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나가겠다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나는
나대로
나의 역할을 할 겁니다.”

“법과 회사와
투자자의 언어 안에서.”

그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오늘 이 대화는
공식 기록으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김성훈의 얼굴에
혼란이 스쳤다.

“……왜요.”

“지금
저를
살려주는 겁니까.”

민도윤이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아직
칼을 뽑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 말은
김성훈에게도,
민도윤 자신에게도
동시에 향한 말이었다.


6. 전령의 망설임 –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밤

그 시각,
어딘가 높은 곳.

도시의 빛과
교도소의 어둠,
양쪽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에
한 시온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던 장부 대신,
오늘은
길게 뻗은 검의 칼집이
쥐어져 있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장부가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 한쪽 페이지에는
    **정○○**의 이름 아래
    “작업장 폭력 구조에 대한 내부 진정”이 적혀 있었고,

  • 다른 페이지에는
    민도윤
    “익명 제보자 A – 김성훈(추정)”이라는 이름이
    마주 보고 있었다.

시온은
칼자루를 천천히 쥐었다.

이 도시의 지배자들은—

언제든
작은 톱니 하나를 골라
새로운 정○○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에는
‘내부 유출자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한 사람을 태워 올릴 수도 있다.

칼날이
칼집 안에서
잠시 울렸다.

만약
그들이
내 눈앞에서
또 다른 희생양을 세우려 한다면—

그때는
칼을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장부의 다른 페이지가
바람에 넘겨지듯 펼쳐졌다.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새로 적혀 있었다.

“익명 제보자 A –
두 번째 문서 전송 후,
여전히 익명 상태 유지.”

“그러나
스스로를
‘죄인’이자 ‘증언자’로
동시에 인식하기 시작.”

“민도윤 –
내부 유출자 색출 가능성 인지.”

“그러나
당장 칼을 들지 않고,
관찰·보류를 선택.”

시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둘 다
아직
결정을 끝내지 않았다.

정○○는
감옥 안에서
작은 구조를 흔들기 시작했고,

김성훈은
구조 안에서
익명으로 방향을 바꾸려 했으며,

민도윤은
자신의 재능이
악을 설계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입으로 인정했다.

칼자루를 쥐고 있던 손이
천천히 힘을 뺐다.

시온은
검을
다시 장부 옆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아직 아니다.”

“칼을 뽑으면—”

“이 도시 사람들은
또다시
한 사람의 죽음에만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나는
그들 시선이
구조 전체를 향하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의 옆에서
바람이 불었다.

어디선가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리는 듯했다.

새로운 기사 한 편,
새로운 진정서 한 장,
새로운 제보 메일 하나.

그것들이
도시의 공기 속에서
서서히 섞이고 있었다.

시온은
장부를 펼쳐
맨 아래에 한 줄을 더했다.

“이름은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칼날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이 도시가
겨우 지켜 낸
마지막 균형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미국 신용카드 추천 TOP 7 (2025년 목적별 혜택 비교)

월배당 ETF TOP 5|2025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스마트 배당 전략

내 월급은 왜 그대로일까? | 2025년 임금 상승 전망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