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전령 - 6장 – 설계된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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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설계된 사냥
1. 어둠 속에 그려진 시나리오
늦은 밤,
도시 중심의 한 빌딩 15층.
간판에는 컨설팅 회사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유리문 안쪽 회의실은
선거 전략 회의실과 다를 바 없었다.
조명이 낮게 깔린 방 안,
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굵은 글씨가 떠 있었다.
“도시의 전령 – 여론전 관리 플랜”
테이블 끝자락에
노 영학이 앉아 있었다.
넥타이는 살짝 풀어져 있었고,
자리에 놓인 물컵에는
얼음이 거의 녹아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마케팅 회사 대표,
전직 정보 경찰 출신 자문위원,
여론조사 전문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직 정보 경찰 출신 남자가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가리켰다.
“의원님,
‘전령 괴담’ 여론은
지금 세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화면에는 간단한 도표가 떠 있었다.
① “전령이든 뭐든 나쁜 놈 죽이면 좋다” – 분노형 환호층
② “심판은 좋지만 방법이 문제다” – 회의적 공감층
③ “괴담이고 폭력이다, 전부 막아야 한다” – 불안형 거부층
남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3번은
의원님 기자회견 이후로 꽤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1번과 2번입니다.”
그는 그래프를 확대했다.
“1번은
대놓고 전령을 찬양하는 층.
지금은 소수지만
감정적으로는 가장 폭발력이 큽니다.”
“2번은
의원님께 가장 위험한 층입니다.
‘저 놈들은 나쁘다,
근데 왜 아무도 제대로 처벌 안 하냐’
이 정도 선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들.”
노 영학이 팔짱을 꼈다.
“왜 위험하지?”
전직 정보 경찰이 말했다.
“이 층은
쉽게 ‘정치적 반대자’가 됩니다.
제도권을 믿지 않기 시작하면
누군가 ‘새 판’을 깔자고 나설 때
가장 먼저 움직일 사람들입니다.”
마케팅 회사 대표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요—
1번과 2번을 한꺼번에
위험한 이미지로 묶어야 합니다.”
그가 다음 슬라이드를 띄웠다.
화면에 큼지막하게 적힌 제목.
“‘전령 팬덤’ = 잠재적 폭력 집단 프레임”
“모든 전령 언급,
모든 분노에 기반한 정의 담론을
조금씩 ‘위험’, ‘극단주의’, ‘모방범’ 이미지랑
묶어 버리는 겁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실제 폭력 사건 몇 개,
온라인 과격 댓글 몇 개,
자극적인 밈 몇 개를 골라내서
대표 이미지로 키워요.”
“그럼
1번과 2번은
자연스럽게 같은 묶음이 됩니다.
‘전령 얘기하는 놈 = 위험한 놈’
이런 공식이 생기는 거죠.”
노 영학이 물었다.
“실제 사건이
그렇게 많이 터질까?”
전직 정보 경찰이
짧게 웃었다.
“요즘 세상에요?
‘전령님 우리 학교에도 와주세요’
댓글 몇 개만 돌아다녀도
중·고등학생들 중에
‘우리도 한 번 해 볼까’ 하는 애들
금방 나옵니다.”
“그리고…
꼭 진짜가 아니어도 됩니다.”
마케팅 대표가 낮게 말했다.
“가짜 계정,
가짜 카톡방,
가짜 팬카페.
위에서 만든 ‘전령 팬덤’ 스크린샷 몇 장만 있어도
뉴스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테이블 위 공기가
조금 더 차갑게 식었다.
잠시 생각하던 노 영학이
팔짱을 풀었다.
“…도 넘는 거 아닌가?”
그 말에는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 섞여 있었다.
전직 정보 경찰이 바로 받았다.
“의원님,
이건 공격이 아니라
방어입니다.”
“지금도
의원님을 포함한 몇몇 분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조금씩 퍼지고 있습니다.”
“‘전령’ 담론을 그냥 방치하면
다음에는
의원님이 직접
‘심판 대상’으로 지목됩니다.”
그는 모니터에 떠 있는 그래프 하단을 가리켰다.
“괴담이 커지면
잘못한 사람만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제일 먼저 무너지는 건
눈에 잘 띄는 사람들입니다.”
노 영학은
자신의 얼굴이
방송 화면에 비친 순간들을 떠올렸다.
기자회견,
토론회,
입법 발의 기자회견.
“…그래서
희생양을 먼저 던져야 한다는 거지.”
그가 낮게 말했다.
마케팅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령을 찬양하다가 폭주한 집단’.
‘전령 괴담에 중독된 청년들’.
‘취약계층과 청소년을 선동한 익명 세력’…”
그는 한 장의 보고서를 앞으로 밀었다.
“프레임을 만드는 건
저희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직 정보 경찰이
말을 이었다.
“실제 사건 하나는
필요합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에서.”
그는 덧붙였다.
“화재,
기물 파손,
경미한 부상 정도면
여론은 충분히 움직입니다.”
노 영학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이
노란 반점처럼 떠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알아서 하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고
나중에 기록되겠지.”
전직 정보 경찰이
짧게 웃었다.
“우리는
항상 그래 왔습니다, 의원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일을 정리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이
의원님께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여론을 관리할 뿐입니다.”
노 영학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혹시라도
너무 과하다 싶으면—”
“그땐
그냥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말해 주시면 됩니다.”
마케팅 대표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가 이 법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라고
한 문장만 얹어 주시면
나머지는
여론이 알아서 움직입니다.”
방 안의 공기가
완전히 굳었다.
잠시 후,
노 영학이 말했다.
“…알아서 하게.”
그는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단,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멈춰라.”
그 말은
책임을 넘기는 사람의
마지막 양심처럼 들렸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복도에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전직 정보 경찰은
모니터를 껐다.
“…선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의 중얼거림은
방 안에 남았다.
2. 작은 사무실, 새로운 동맹
도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3층짜리 낡은 건물 2층.
문 앞에
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법률사무소 사이(間)”
윤 서연은
그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안에서 들리는 소음은
거의 없었다.
복도에는
벤치 하나와 낡은 화분이 전부였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열려 있어요.”
문을 열자,
작은 사무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는 판례집과 법전이 뒤섞여 있고,
책상 위에는 파일들이 적당히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커피 향과 복사기 열이 섞인 공기.
책상 뒤에 앉아 있던 여성이
서연을 향해 일어섰다.
검은 뿔테 안경,
단정한 셔츠와 카디건,
피곤이 살짝 밴 눈빛이었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집중이 감돌았다.
한 지우.
공익 사건과 인권 변론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 가고 있는 변호사였다.
“윤 기자님이죠?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편의점 사건 피의자
국선 변호 맡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서연이 악수를 받으며 말했다.
“네.
저도 기자님 기사
몇 개 스크랩해 놨습니다.”
한 지우가 웃었다.
“피의자 C가
조사 과정에서
‘전령’ 이야기를 자꾸 해서요.
그 맥락을 이해하려면
윤 기자님 기사랑
댓글들을 보는 게 좋더군요.”
그녀는 서류 몇 장을 건넸다.
“이건
C의 진술 조서 일부고,
이건
요즘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괴담·가짜뉴스 방지법’ 초안입니다.”
서연은 법안 초안을 훑어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생각보다
많이 세네요.”
조항 곳곳에
애매한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괴담성 표현물’”
“‘심판·응징 등을 찬양·미화하는 온라인 콘텐츠’”
“‘익명성 기반 집단 정의 실천 행위를 조장하는 표현’”
한 지우가 말했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윤 기자님 기사도
언젠가는 ‘심사 대상’이 될 겁니다.”
“전령을 찬양하지 않아도요?”
“찬양 여부는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죠.”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쪽이든
‘괴담을 확산시켰다’고
뒤집어씌우기 쉬운 구조입니다.”
서연은
법안 초안의 구석을 접었다.
“그래서 날 부르신 건가요?
기사 때문에
우리 피의자가
이상한 망상에 빠졌다고
따지러 오신 건 아니죠?”
한 지우가 피식 웃었다.
“아니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녀는 책상 위 다른 파일을 꺼냈다.
“저는
이 법안과
편의점 사건,
그리고 의원님 기자회견이
같은 그림의 일부라고 보고 있습니다.”
서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같은 그림이요?”
“네.
진짜 문제는
병원, 학교, 재개발에서
사람들 죽어나간 사건들인데—”
한 지우가 말했다.
“지금 권력자들은
그 얘기를
‘괴담’이라는 상자 안에 넣고
함께 묻어버리려는 것 같아요.”
그녀는 모니터를 돌려
서연에게 보여 주었다.
모니터에는
익명 커뮤니티 캡처,
이상한 카톡방 캡처,
‘전령 팬카페’라는 이름의 카페 화면이 떠 있었다.
“이 카톡방과 카페,
전부
같은 IP 대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가입자 수에 비해
활동 로그가 너무 일정합니다.
대화 패턴도 어색하고요.
누가
‘전령 팬덤’을 연출하는 것처럼 보여요.”
서연이 숨을 들이켰다.
“…연출.”
“네.
실제 분노에
가짜 얼굴을 씌워버리는 거죠.”
한 지우가 말했다.
“그래야
그 분노 전체를
‘저 모자 쓴 놈들’ 탓으로
몰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이미 수십 번 봐 온 패턴을
다시 요약하는 것 같았다.
“윤 기자님.”
한 지우가 눈빛을 곧게 세웠다.
“저는
법정에서 싸울 겁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위헌 소송도 준비해야겠죠.”
“근데
여론의 장부는
제가 아니라
기자님이 쓰는 겁니다.”
그 말은
시온이 했던 말과
묘하게 겹쳐졌다.
“…도시의 장부.”
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한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이 도시에
진짜로 필요한 건
전령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전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지,
왜
‘하늘이라도 좀 나서라’고
중얼거리게 되었는지.”
그녀는 말했다.
“그걸 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연은
노트를 꺼냈다.
새 페이지 상단에
조용히 제목을 적었다.
“연재 – 도시의 장부”
부제: “누군가를 전설로 부르기 전에
하지 못한 일들”
3. 장부의 붉은 점, 흔들리다
그 시각,
도시 어딘가 작은 방.
한 시온의 장부가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페이지 상단에
굵은 글씨로 적힌 이름 하나.
“노 영학”
옆에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숱한 선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병원 확장 예산 승인”
“학교 폭력 사건 축소·은폐 회의 참석”
“재개발 인허가 서류 서명”
“언론 압박, 광고 통제”
“괴담·가짜뉴스 방지법 추진”
새로 적힌 항목이
아래에 덧붙었다.
“전령 팬덤 연출 지시,
모방 사건 여론 프레임 설계 동의.”
시온은
그 문장을 조용히 읽었다.
“…선택했군.”
노 영학에게 줬던
마지막 유예의 이유는
하나였다.
‘혹시라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금,
그는 그 선을
조금 더 넘어서기로 했다.
“직접 칼을 든 건 아니지만,
칼이 휘둘러지는 무대를
설계한 자.”
그는 펜을 들어
붉은 점 옆에
짧게 표시를 더했다.
“보류 → 경고 단계 초과.”
옆 페이지에는
또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장 호진”
그의 아래에는
교육청 사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러나
마지막 줄에는 아직
굵은 선이 그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시온은 그렇게 적었다.
그는 장부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원칙은
**‘이미 벌어진 일’**에 개입하는 것.”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미래의 범죄를 막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사고처럼 기록될 작은 화재,
경미한 부상.”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한 번 설계된 사냥은
항상
누군가의 예상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갔다.
“…그렇다면
그 끝을 막는 것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개입이 될 수도 있겠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번져 있었다.
어디선가
사냥이 준비되고 있었다.
4. 피해자 모임, 말문이 열리는 밤
시청 근처 작은 문화센터 3층.
현수막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다.
“도시의 장부 –
잊힌 사건들을 말하다 (간담회)”
사회단체 연합과
〈도성일보〉 공동 주최.
실제로는
윤 서연이
기획안을 들고 뛰어다녀
겨우 성사시킨 자리였다.
마이크 앞에는
서연이 서 있었고,
좌석에는
서너 줄 정도 사람들만 앉아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노인,
중년 여성,
젊은 남녀,
학생들.
각자 다른 표정이었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어딘가에
말을 못 한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온 사람들.”
서연은
손에 든 메모를 내려다봤다가
청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오늘 이 자리는
거창한 세미나도 아니고,
누군가를 바로 처벌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이 도시에서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사건들을
한 번 모아 보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였다.
병원 사건에서
약을 잘못 투여받고 죽은
아이의 엄마.
그녀는
처음에는 목소리가 떨려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
그러나
잠시 뒤에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제가 한 건
그냥
의사의 말을 믿은 것뿐이었어요.
나중에야
병원 내부 보고서가 있다는 걸 알았고요.”
“그 보고서에서는
우리 애 이름이
**‘부작용 가능성’**이라는 단어 옆에
작게 적혀 있더라고요.”
그녀의 손이
마이크를 꽉 쥐었다.
“제 아들은…
가능성이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조용한 울음이
몇 군데서 났다.
두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삼촌이었다.
박 민서 군의 삼촌.
그는
“조카가 죽고 나서야
학교가 얼마나 차분하게
‘절차’를 진행하는지 알았다”고 말했다.
“아이를 잃은 집에서는
세상이 무너졌는데,
학교에서는
회의록이 차분하게 적히더군요.”
그는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여기,
조카가 죽고 난 다음 날 회의록입니다.”
거기에는
“학생 보호 방안”,
“언론 대응 방안”,
“학부모 민원 관리”라는 항목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저 안에는
‘우리가 뭘 잘못했나’라는 문장이
한 줄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
누군가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양한 사람들이
우뚝 서서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서
불법 해고를 당한 노동자,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다가
‘회사 이미지를 위해’
입을 닫으라고 강요받은 여성,
재개발 구역에서
보상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내쫓긴 노인.
서연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노트와 녹음기에 담았다.
…이게
진짜 ‘전령’을 만든 토양이구나.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수십 번, 수백 번 들으면서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걸 보니까,
결국
하늘에라도 기대고 싶어진 거지.
마지막 순서가 끝날 즈음,
사회자가 말했다.
“혹시
‘도시의 전령’ 괴담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보셔도 좋습니다.”
잠시 정적.
그러다가
뒤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저요.”
그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파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어딘가 불편한 태도였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솔직히 말해서요.”
그가 말했다.
“처음 그 얘기 나왔을 때
좀 통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이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병원장,
재개발 사장,
학교 가해자들…
다들 죽었다고 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는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굴렸다.
“근데
편의점 사건 보도 보고,
좀 무서워지더라고요.”
“진짜 나쁜 놈이 죽었는지,
아니면
그냥
운 나쁜 놈 하나가 대신 맞은 건지
구분이 안 되니까요.”
그의 말에
조용한 웅성거림이 퍼졌다.
“그래서
오늘 여기 왔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정말 나쁜 놈들이
아무 일 없이 잘 사는 얘기들을
한 번에 들으면
저 같은 애들,
진짜로 칼 들고 싶어질 때가 있거든요.”
“’전령’ 같은 게 진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솔직한데—”
그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근데
그래서 우리가
전부
전령이 되기로 마음먹는 순간,
이 도시는
정말 끝장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의 말은
서툴렀지만
정확했다.
서연은
그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전부 전령이 되는 순간
도시는 끝난다.’
그때,
문화센터 건물 1층 앞 인도에
검은 승합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섰다.
5. 설계된 불꽃
문화센터 옆 골목.
전직 정보 경찰이
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
“…곧 끝날 시간이지.”
그 옆에는
후드티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마스크와 캡 모자로 가려져 있었지만,
몸짓에는 긴장과 불안이 섞여 있었다.
“저…
진짜
사람 안 다친다면서요.”
남자가 말했다.
전직 정보 경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건만 부수면 돼.
들어가서
현수막 찢고,
의자 몇 개 던지고,
스프레이로 벽에 글만 쓰고 나오면 된다.”
“CCTV는요?”
“우리가 다
‘관리’해 줄 거야.
대신—”
그는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이 마스크랑 후드티는
꼭 쓰고 들어가.
나중에 언론에
‘전령 팬덤 복면 집단 폭력’
이렇게 나와야 하니까.”
남자의 손이
조금 더 떨렸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전직 정보 경찰이 말했다.
“너 돈 필요하다고 했지.”
“네.”
“그럼
불평하지 말고
맡은 일만 해.”
그의 목소리는
차갑진 않았지만,
단단히 굳어 있었다.
“어차피
너 같은 애들이
이런 일 안 하면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평생 안전할 거고—”
“너는
오늘 일 안 해도
다른 데서 또 비슷한 일 하게 돼.
세상이 그래.”
그 말은
위로도, 위협도 아니었다.
그냥
이 도시의 구조를
습관처럼 읊는 말이었다.
전직 정보 경찰이
가방 하나를 내밀었다.
“이 안에 있는 것들만 쓰고,
나머지는 건드리지 마.
특히—”
그는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불은
절대 내지 마라.
그건
시키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는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빛은
불안과 초조로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 안 다치게,
물건만 부수고…”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듯 중얼거렸다.
문화센터 계단 위,
간담회가 막 끝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어나
조용히 박수를 쳤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연이 말했다.
“오늘 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도시의 장부’ 연재에
차례로 녹여 넣겠습니다.”
홀 뒷문 쪽에서
흰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메신저 창이 열려 있었다.
– 곧 끝난다.
준비해.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홀 앞,
남자가 가방을 들고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람 안 다친다.
그냥 의자 몇 개—
그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나,
손에 쥔 가방의 무게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스프레이와 페인트통,
그리고
전직 정보 경찰이 넣어준
작은 신호용 폭죽이 들어 있었다.
“이건
그냥 효과용이다.
소리·빛만 나고,
큰일은 안 난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남자는
계단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 순간,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무거워 보이네요.”
남자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계단 모서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
익숙한 얼굴.
한 시온.
“…아,
예.
그냥… 장비가 좀 있어서요.”
남자가 횡설수설 말했다.
시온은
그 가방을 잠시 내려다봤다.
“여는 걸
도와드려도 될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반사적으로
남자의 손이
가방끈을 더 꽉 쥐었다.
시온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
두 가지 냄새.
돈이 필요한 자가 풍기는 냄새,
그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끝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자의 냄새.
시온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그 가방을 들고 올라가면—”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또렷하게
계단 벽에 울렸다.
“당신 이름은
장부의 어느 페이지에
새로 적히게 될까요.”
남자가 눈을 치켜떴다.
“…뭐라고요?”
“누군가가
안전하다고 시켰겠죠.”
시온이 말했다.
“물건만 부수면 된다고,
사람은 안 다칠 거라고,
CCTV는 처리해 준다고.”
남자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어떻게…”
“당신보다
여러 번
같은 말을 들은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시온이 말했다.
“끝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남자는
계단을 한 칸 더 올랐다.
“비켜 주세요.”
그의 말에는
성급함과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기운이 섞여 있었다.
“전…
이미 하겠다고 했습니다.”
“안 하면
더 큰일 납니다.”
그 말은
협박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어디선가
그에게도
빚,
계약,
가족,
여러 사정이 있겠지.
시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죠.”
“뭔데요.”
“지금 여기서
가방을 내려놓고
그냥 도망치세요.”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저…
죽어요.”
“네.”
시온이 말했다.
“아마
사회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여러 번 죽겠죠.”
그의 목소리는
잔인하게 솔직했다.
“하지만
계단 위로 올라가면—”
그는
천천히 계단 위쪽을 가리켰다.
“당신 말고
다른 누군가가
죽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당신도
결국
또 죽게 될 겁니다.”
남자는
말을 잃었다.
계단 아래 어딘가,
전직 정보 경찰의 핸드폰이
한 번 진동했다.
– 왜 안 올라가?
화면에
짧은 메시지가 떴다.
위에서는
간담회가 끝나
사람들이 삼삼오오
홀에서 나와 복도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문화센터 입구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제가
안 가면요.”
남자가 물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합니다.
누군가는
대신 올라갑니다.”
그 말은
쓸데없이 똑똑했다.
“세상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요.”
시온이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은
늘 그런 식이었죠.”
그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래서
지금 선택하는 사람의 이름을
누가 적을지
정해야 하는 겁니다.”
남자의 목이
마른 침을 삼켰다.
“…제가
내려놓으면,
그래도
누군가는 올라갈 거라고요.”
“네.”
시온이 대답했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
그 누군가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복도 끝,
서연이 홀에서 나와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기사 기대할게요.”
그들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남자는
가방끈을 쥔 손에
더 힘을 줬다.
이걸 놓으면
나 혼자 망하고—
이걸 들고 올라가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망한다.
두 선택 모두
망하는 길처럼 보였다.
“그래서
장부라는 게 있는 겁니다.”
시온이 말했다.
“누가
어느 길을 골랐는지
기록하는 장부.”
남자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맺혔다.
“…제가
내려놓으면요.”
그가 물었다.
“누가
그걸 알아줍니까.”
시온이
조용히 대답했다.
“적어도
두 사람은 압니다.”
“당신,
그리고
장부를 쓰는 자.”
남자의 손이
조금씩 풀어졌다.
잠시 후,
그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그가 말했다.
“그래도
이 안에 든 거로
누가 다치는 건
보기 싫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계단 아래쪽.
전직 정보 경찰이
급히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야!
뭐 하는—”
그가 소리쳤다.
그 순간,
계단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다
잠시 발을 헛디뎠다.
플래시처럼 짧은 순간.
전직 정보 경찰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미끄러운 계단 난간을 잡지 못했고,
몸은 앞으로 쏠렸다.
그의 발이
가방끈을 밟았다.
가방이 굴러 떨어지며
계단 중간에서 멈췄고,
남자의 몸은
그 위를 넘어가며
벽에 세게 부딪혔다.
“쿵.”
짧은 소리.
천장이 약간 울렸다.
도시가 수없이 들어온
평범한 사고 소리 중 하나.
잠시 정적 후,
위층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누가 넘어졌나 봐!”
전직 정보 경찰은
계단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 뒤편에서
피가 조금씩 번져 나왔다.
움직임이 없었다.
가방은
계단 중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연이
복도 쪽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사고인가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119 불러요!”
누군가가
가방을 잡으려다
멈칫했다.
“이거…
가방,
주인 누구예요?”
모두가 서로를 쳐다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계단 옆 모서리,
한 시온은
조용히 서 있었다.
방금 일어난 일이
완전히 ‘우연’이라고 말하려면
양심이 찔릴 정도였고,
‘의도된 것’이라고 말하면
어딘가 과장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개입일 뿐입니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올라갔다면
더 많은 일이 벌어졌겠지.”
6. 가방 속의 설계도
119와 경찰이 도착했고,
계단은 금방
노란 테이프로 막혔다.
전직 정보 경찰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사는
“상태가 위중하다”고 말했다.
서연은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 한 명이
계단 중간에 놓인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는
스프레이와 페인트통,
현수막을 찢을 수 있는 커터칼,
그리고
작은 폭죽 몇 개가 나왔다.
또 하나,
얇은 서류봉투.
경찰이 봉투를 열자
안에서
프린트물이 나왔다.
“대상:
‘도시의 장부’ 간담회 참석자 일동.”
“목표:
집단 과격 이미지 연출,
‘전령 팬덤 폭력 집단’ 프레임 형성.”
“방법:
복면 착용 / 현수막 파손 / 의자 던지기 /
벽면 스프레이(‘전령이 심판한다’ 등 문구).”
문서 하단에는
마케팅 회사 로고처럼 보이는
영문 약자가 찍혀 있었다.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게 뭐야, 대체.”
옆에 있던 형사가
종이를 빼앗아 보며 중얼거렸다.
“설계도잖아, 설계도.
폭력 연출 매뉴얼.”
서연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전령 팬덤 연출…
여론 프레임…
한 지우가 보내준
자료 속 단어들이
그녀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이어졌다.
“저 문서…
사진 찍어도 될까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경찰이 경계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수사 중인 자료입니다.
지금은 안 됩니다.”
“그럼…
최소한
‘마케팅 회사 로고’가 찍혀 있다는 것 정도는
보도해도 되나요?”
형사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마
위에서 막겠죠.”
그 말은
쓰라는 건지,
쓰지 말라는 건지
애매하게 들렸다.
그러나
서연은 이미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렸다.
이건
누군가가 잃어버린 가방이 아니라—
누군가가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연출의 흔적이야.
한쪽에서
119 대원이 웅성거렸다.
“맥박이…
아주 약하긴 한데
아직 있습니다!”
전직 정보 경찰은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서연은
그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새 기사 제목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령 팬덤,
누가 설계했나.”
7. 다시, 장부 위에
밤 늦게,
작은 방.
한 시온은
장부를 펼쳤다.
새로운 기록이
몇 줄 추가되어 있었다.
“계단에서의 사고 –
가방 소지자,
마지막에 하차 선택.”
이름 옆에는
연필로 작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심판 대상에서
한 칸 비켜섬.
향후 삶에서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 다수.”
그리고
그 아래.
“설계자(전직 정보 경찰) –
여론 조작 및 폭력 연출 기획.
계단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
시온은
잠시 펜을 들고 망설였다.
“죽게 둘까,
살려둘까.”
계단에서의 충돌은
엄밀히 말하면
‘우연’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 가방은
홀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살려둔다면,
그는
다시 일을 계속할까.”
“죽게 두면,
그의 윗사람들은
그를
‘안타까운 희생자’로 포장할까.”
둘 다
완벽한 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살려두자.”
그가 조용히 말했다.
“그 대신—”
그는 줄을 그었다.
“의식을 되찾은 순간부터
자신이 설계했던 것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 뻔했는지
끝없이 듣게 될 것.”
“자신이 썼던
‘연출 매뉴얼’이
어떻게 폭로되는지
생생하게 보게 될 것.”
장부에 적힌 문장은
형벌이면서,
예고편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노 영학의 이름 옆을 바라봤다.
“가방 속 문서가
어디까지 올라갈까.”
“중간에서 끊길까,
아니면
그의 책상 위까지 올라가
세상에 공개될까.”
시온은
그 답을
인간의 장부에게 맡기기로 했다.
“윤 서연.”
그는
그녀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오늘,
또 한 줄을 썼겠지.”
8. 기사, 그리고 조용한 폭발
〈도성일보〉 온라인 에디션.
밤 11시 58분,
새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 ‘전령 팬덤 폭력 연출’…
문화센터 계단에 떨어진 가방 속 설계도
부제에는
작게 적혀 있었다.
“누가 괴담을 만들고,
누가 그 괴담을 이용하는가”
기사에는
이날 문화센터 간담회,
계단 사고,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과 문서 내용,
마케팅 회사 로고,
그리고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과의 연결점이
긴 호흡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전령 같은 게 있어서
나쁜 놈들만 골라 죽이면 좋겠다’고.”
“그러나
오늘 계단에 떨어진 가방은
묻고 있다.”
“도시의 전설이
‘자연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설계’된 것인지를.”
“그리고
진짜로 심판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기사가 올라간 지
1시간이 되기도 전에,
댓글창에는
서로 다른 분노와 혼란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게 더 무섭다.
진짜 전령보다
가짜 전령을 만드는 인간들이.”
“결국
우리 분노까지
마케팅하고 있었던 거냐.”
“믿기 싫지만
너무 그럴듯해서
더 기분 나쁘다.”
“그래서 진짜 전령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솔직히 그게 더 궁금함.”
한편,
다른 포털에서는
이와 비슷한 기사가
곧바로 막히기 시작했다.
“해당 기사는
법률 검토를 위해
일시적으로 열람이 제한되었습니다.”
광고주 몇몇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따로 돌기 시작했다.
“윤 서연…
얘 좀 조심해야겠다.”
그 말은
경고였고,
동시에
인정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서연의 메일함과 SNS에는
새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기사 잘 봤습니다.
오늘 간담회에서
말 못한 이야기
나중에라도 전하고 싶어요.”
“예전에
비슷한 연출 알바 제안 받은 적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제보 드릴게요.”
그 중 하나는
낯선 메일 주소였다.
– “문화센터 계단에 있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쓴 장부를
계속 보고 싶습니다.”
발신인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 문장은
어딘가 익숙한 어투였다.
서연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계단에 있던 사람…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잠깐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그러나
그녀는
그 생각을 깊게 이어가지는 않았다.
지금은
바로 눈앞의 장부를
계속 쓰는 게 먼저였다.
그녀는
새 문서를 열었다.
“도시의 장부 – 제2회
‘우연처럼 떨어진 가방 하나가
보여 준 것들’”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 앞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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