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라는 거대한 문턱 앞에서
"기자가 되려면 언론고시를 봐야 한다며?"
언론인을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언론고시'는 마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처럼 여겨집니다. 서류 전형부터 시작해 논술, 작문, 상식, 전공 시험, 그리고 수차례의 면접까지, 일반 기업 채용을 능가하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언론고시'라는 제도가 진정으로 유능하고 윤리적인 기자를 선발하는 최적의 방식일까요? 혹은 오히려 기자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저해하고, 한국 저널리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고착시키는 원인은 아닐까요?
이 글에서는 기자의 자격은 누가 결정하는지, 그리고 '언론고시'라는 현실이 가진 명암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과연 기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며, 현재의 기자 양성 및 선발 시스템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1. '언론고시'란 무엇인가? 그 치열한 현실
'언론고시'는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주요 언론사들이 신입 기자를 채용하는 과정이 마치 과거의 행정고시처럼 어렵고 복잡하다 하여 붙여진 별명입니다.
- 전형 과정:
- 서류 전형: 학력, 어학 점수, 자격증, 자기소개서, 기사 스크랩 등
- 필기 전형:
- 논술/작문: 시사 문제에 대한 견해, 특정 주제에 대한 창의적 글쓰기 능력 평가.
- 상식/시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상식과 시사 이슈에 대한 이해도 평가.
- 국어/영어: 어문 규정, 독해력, 작문 능력 등 기본 소양 평가.
- 전공 시험: 언론 관련 전공 지식이나 특정 분야(예: 경제, 법학) 지식 평가.
- 면접 전형:
- 실무 면접: 지원자의 논리력, 순발력, 기자로서의 태도 평가.
- 임원 면접: 인성, 가치관, 조직 적합성 등 최종 평가.
- 합숙/토론 면접: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 토론, 팀워크, 리더십 평가 (일부 언론사).
- 경쟁률: 상위 언론사의 경우 수백 대 1에서 수천 대 1에 달하는 살인적인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이는 지원자들이 몇 년씩 '고시'를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언론고시'는 좋은 기자를 선발하는가? 명과 암
언론고시를 통해 선발된 기자들이 언론사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비판적인 시각 또한 존재합니다.
2.1. '언론고시'의 긍정적 측면 (명)
- 기본 소양 검증: 글쓰기 능력, 시사 상식, 논리력 등 기자에게 필수적인 기본적인 역량을 일정 수준 이상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습니다.
- 공정성 확보: 특정 인맥이나 학연, 지연에 의한 채용을 줄이고, 시험이라는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함으로써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취지가 있습니다.
- 성실성 및 끈기: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는 것은 그만큼 목표 달성을 위한 성실성과 끈기를 갖췄다는 방증이 될 수 있습니다.
2.2. '언론고시'의 부정적 측면 (암)
- 획일적인 인재상: 시험에 최적화된 인재를 선발하다 보니, 다양한 배경과 경험, 전문성을 가진 기자보다 '시험을 잘 보는' 획일적인 인재상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기획력', '공감 능력', '용기' 등은 시험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 심층 취재 능력 부족: 시험 공부에 몰두하다 보면 현장에서 발로 뛰며 직접 정보를 얻고 검증하는 '심층 취재' 경험을 쌓기 어렵습니다.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다양성 부족: 특정 학벌, 특정 학과 출신이 유리한 구조가 되면서 기자 집단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이는 보도의 편향성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엘리트주의'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기레기' 논란과의 연결고리: 언론고시가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문제점들을 키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는 인식은 윤리 의식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 '객관적 능력'에 대한 과도한 신뢰: 시험 점수나 스펙이 '기자로서의 자질'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사는 단순히 글을 잘 쓰고 상식이 많다고 해서 좋은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기자의 자격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기자의 자격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해야 할까요?
- 언론사 내부의 책임: 언론사는 단순히 '고시'를 통한 스펙 좋은 인재 선발을 넘어, 인턴십, 실무 교육, 멘토링 등을 통해 기자의 역량과 윤리 의식을 함양시키는 데 투자해야 합니다. 채용 과정에서 실제적인 취재 역량, 비판적 사고, 윤리 의식 등을 평가하는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 언론 윤리 기준의 강화: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인 단체가 기자 윤리 강령을 강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기자에 대한 자율적인 제재를 엄격히 시행해야 합니다. 윤리 교육의 의무화도 필요합니다.
- 시민 사회의 감시와 평가: 독자들이 기사의 질과 기자의 윤리 의식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레기'라는 비판이 단순히 감정적인 비난에 그치지 않고, 언론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져야 합니다.
- 저널리즘 교육의 방향 전환: 대학의 저널리즘 교육은 이론 지식 전달을 넘어, 현장 실무 능력, 비판적 사고, 윤리 교육 등을 강화하여 실질적으로 좋은 기자를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결론: '언론고시'를 넘어 '진정한 기자'를 찾아서
'언론고시'는 현재 한국 언론인 채용의 현실이지만, 그것이 기자의 '유일한' 또는 '최고의' 자격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정보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기자에게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능력이나 암기된 상식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 비판적인 시각,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유연성,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윤리 의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기자의 자격은 시험 점수가 아닌, 얼마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지, 얼마나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그리고 얼마나 공정하게 사회를 기록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언론고시'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자를 양성하고 선발하는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과 대안 모색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