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전령 - 4장 – 흔들리는 성벽

4장 – 흔들리는 성벽 1. 국회의원실, 아침의 회의 국회의사당 별관, 6층. 두꺼운 방음문 안쪽, 회의실에는 벌써 커피 냄새와 피곤이 섞여 있었다. 벽걸이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 하단 자막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연결된 죽음들 – 병원, 학교, 재개발의 공통된 이름들” “지역 유력 인사들, 잇따른 사망… 온라인선 ‘하늘의 심판’ 괴담 확산” 테이블 위에는 출력물이 널려 있었다. 어제 밤 윤 서연이 올린 기사, 각종 커뮤니티 캡처, 댓글들, 그리고 익명 게시판에 떠도는 괴담 모음. 회의실 한가운데 앉은 남자가 그 종이들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노 영학. 넥타이는 남색, 정장은 여전히 단정했지만, 눈가에는 피곤과 짜증이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도대체… 이걸 그냥 두고 보자는 거야, 뭐야.” 그가 종이를 책상 위에 던졌다. ‘병원 이사장 – 죽음’ ‘학교 가해자 – 투신’ ‘재개발 대표 – 추락사’ ‘공통 회의 참석자: ○○의원 N 모 씨, ○○교육청 J 모 국장, 재개발 시행사, 의료재단…’ 곁에 앉아 있던 보좌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원님, 아직 실명을 직접 쓰진 않았습니다. 직함과 이니셜만 쓰고, ‘의혹 제기’ 수준으로 톤을 맞춘 기사입니다.” “그래서 고마워해야 된다는 거야, 지금?” 노 영학이 코웃음을 쳤다. “‘의혹’이 제일 더러운 거야. 팩트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거. 읽는 사람 머릿속에는 **‘맞나 보다’**만 남는다고.” 그는 TV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봐라. 저기 저 그래픽. 네 사건을 선으로 이어놓고 가운데에 ‘같은 탁자에 앉았던 사람들’ 운운하는 거. 저거 한 번 박히면…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아도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보좌관 하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법적으로 대응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가짜뉴스 규제법 적용 가...

제6장 – 백색 공간 Chapter 6 – The White Space

제6장 – 백색 공간
Chapter 6 – The White Space

빛은 더 이상 희미하지 않았다.
그는 갑작스레 깨달았다. 자신이 어딘가에 ‘서’ 있다는 것을.
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제 발밑엔 감각이 있었고, 공기는 그의 폐를 천천히 채웠다.

The light was no longer faint.
Suddenly, he realized—he was standing somewhere.
He was no longer floating. There was sensation beneath his feet, and air slowly filled his lungs.

그는 눈을 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을 감은 적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에 펼쳐진 공간은 말 그대로 무(無)였다.
모든 것이 새하얬다. 바닥도, 천장도, 끝도 시작도 없었다.
단지 빛. 그러나 눈부시지 않은, 따뜻한 백색.

He opened his eyes. Strangely though, it felt as if they had never been closed.
What lay before him was pure nothingness.
Everything was white—the ground, the ceiling, if such things even existed. No beginning, no end.
Only light. Not blinding, but warm and white.

그 중심에, 그가 있었다.
몸은 완전히 멀쩡했다. 피도, 통증도, 멍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At the center of it stood he himself.
His body was whole. No blood, no pain, no bruises.
And that, he thought, was the strangest part. He remembered.
He had died.

“이곳은 어디지…”

“Where… am I?”

그는 말했지만, 목소리는 메아리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 무언가가 생겨났다.
공기 중에서 천천히 형태를 만들어가던 그것은, 곧 한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He spoke, but his voice produced no echo.
Instead, something appeared in front of him.
It gradually formed out of thin air, taking on the shape of a person.

바로 그 존재.
검은 망토, 은빛 눈동자, 말없이 서 있는 사내.

The very being.
Black cloak, silver eyes, standing silently.

루크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공포는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마치 이 만남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Luke stared at him silently.
There was no fear. In fact, he felt… strangely calm.
As if this meeting had been predestined long ago.

“너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You must now choose.”

그의 머릿속에 그 말이 울렸다.
의미는 단순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한 생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웠다.

The words rang in his mind.
The meaning was simple. But the weight it carried… was as heavy as a lifetime.

“선택?”

“Choose?”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다. 너는 이제 인간이 아니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단 하나—심판자의 길이다.”

“You can return. But you will not be as you were. You are no longer human.
The only life you may choose now… is the path of the Harbinger.”

루크는 숨을 들이켰다.
무게 없는 공기. 하지만 그 안에 진실이 있었다.

Luke took a breath.
Weightless air. But within it, there was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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